부모의 예금을 자녀 한 명이 몰래 인출해 써 버려도, 상속재산을 형제가 가로채도, 오랫동안 우리 법은 이들을 형사처벌하지 못했습니다. '가족끼리의 일'이라는 이유로 형을 면제해 온 제도, 친족상도례 때문입니다.

72년간 유지돼 온 이 제도가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과 법 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고, 상속과 가족 재산분쟁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게 됐는지 정리했습니다.
친족상도례가 무엇인가요?
친족상도례는 가족·친족 사이의 재산범죄에 형을 면제하거나 완화해 주던 형법 제328조의 특례입니다. 가정 내부의 일에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관념에서 나온 제도입니다.
적용 대상은 재산범죄입니다. 절도, 사기, 공갈, 횡령, 배임, 장물, 권리행사방해가 여기에 해당합니다(형법 제344·354·361·365조 등으로 준용). 다만 사람을 해치는 요소가 있는 강도와, 재물을 부수는 손괴는 처음부터 제외됩니다.
개정 전 구조는 이렇게 나뉘어 있었습니다.
- 제1항: 직계혈족·배우자·동거친족·동거가족 및 그 배우자 사이의 재산범죄 → 형을 반드시 면제(유죄이더라도 처벌하지 않음)
- 제2항: 그 밖의 친족 사이의 재산범죄 → 친고죄(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기소)
왜 가족이 빼돌려도 처벌하지 못했나요?
문제는 제1항의 '필요적 형 면제' 였습니다. 가까운 친족이라면 죄가 인정되더라도 법원이 반드시 형을 면제해야 했습니다. 피해자가 아무리 처벌을 원해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현실에서 이 조항은 약자를 겨냥한 범죄를 덮는 데 악용되곤 했습니다.
- 치매나 장애가 있는 부모의 예금을 동거하는 자녀가 빼내 쓴 경우
- 상속재산을 관리하던 형제가 다른 상속인 몫까지 가로챈 경우
- 고령의 부모 명의 부동산을 동거 가족이 임의로 처분한 경우
모두 명백한 횡령·배임이지만, 가해자가 '직계혈족'이나 '동거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이 면제됐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의 발단도,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가 삼촌 등을 횡령으로 고소했지만 동거친족이라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었던 사안이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두 단계로 바뀌었습니다.
먼저 헌법재판소가 2024년 6월 27일, 형 면제를 규정한 형법 제328조 제1항을 헌법불합치로 결정했습니다(헌재 2020헌마468 등, 재판관 전원일치). 피해자가 처벌을 구할 기회 자체를 획일적으로 막아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였습니다. 헌재는 조항의 적용을 즉시 중지시키고, 2025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고치도록 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25년 말 형법을 개정해, 형 면제 조항(제1항)을 삭제하고 가족 간 재산범죄를 친고죄로 전환했습니다. 같은 날 헌재가 합헌으로 유지한 제2항(그 밖의 친족은 친고죄)의 구조로 사실상 일원화된 것입니다.
| 구분 | 개정 전 | 개정 후 |
|---|---|---|
| 직계혈족·배우자·동거친족 등 가까운 친족 | 형을 반드시 면제(처벌 불가) | 친고죄 — 고소하면 처벌 |
| 그 밖의 친족 | 친고죄 | 친고죄(유지) |
| 강도·손괴 | 특례 적용 안 됨 | 특례 적용 안 됨(동일) |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되나요?
핵심은 이제 가족 간 재산범죄도 피해자가 고소하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이라서 무조건 면제'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다만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 적용 시점: 개정 규정은 2024년 6월 27일(헌재 결정일) 이후 저지른 범죄부터 적용됩니다. 그 전의 범죄에는 옛 규정이 문제 될 수 있어 사안별 검토가 필요합니다.
- 친고죄 = 고소 기간: 친고죄는 범인을 알게 된 날부터 6개월 안에 고소해야 합니다(형사소송법 제230조). 이 기간을 넘기면 처벌을 구할 수 없으니, 재산이 샜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시간이 흐른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됩니다.
상속·가족 재산분쟁에서 무엇이 달라지나요?
가장 크게 바뀌는 영역이 상속입니다. 그동안 상속재산을 먼저 차지한 가족을 상대로는 민사상 반환청구만 가능했고, 형사적으로는 친족상도례에 막혀 손을 쓰기 어려웠습니다. 이제는 횡령·배임에 대한 형사 고소라는 카드가 함께 열립니다.
물론 형사 고소가 언제나 정답은 아닙니다. 가족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는 결과를 부를 수 있고, 고소 기간과 증거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형사 고소와 민사상 부당이득·손해배상, 상속재산분할을 함께 놓고 무엇을 먼저 움직일지 설계하는 판단이 중요해졌습니다.
법무법인 존재는 이렇게 봅니다
친족상도례의 변화는 단순한 조문 하나의 개정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덮여 있던 재산범죄에 책임을 물을 길이 열린 것입니다. 특히 상속을 앞두거나 진행 중인 가정에서,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이 선을 넘었을 때 쓸 수 있는 수단이 늘었습니다.
법무법인 존재는 상속·가사 사건에서 재산의 흐름을 먼저 추적해, 형사 고소가 실익이 있는지, 민사상 반환청구나 상속재산분할과 어떻게 맞물릴지를 함께 설계합니다.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 윤지상 변호사의 재판부 관점으로, 감정적인 고소가 아니라 회복 가능성이 가장 큰 순서를 짚어 드립니다. 가족이기에 더 아픈 문제일수록, 법의 언어로 정리하는 것이 오히려 관계와 재산을 함께 지키는 길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재산범죄의 방패가 아니다. 다만 무엇을 먼저 움직일지가 결과를 가른다.
자주 묻는 질문
예전에 가족이 재산을 빼돌린 것도 지금 처벌할 수 있나요?
기준은 '언제 저질렀는가'입니다. 개정 규정은 2024년 6월 27일 이후에 저지른 범죄부터 적용됩니다. 그래서 돈을 빼돌린 행위 자체가 그 이전에 있었다면, 피해자가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더라도 옛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어 처벌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행위가 그 이후라면 처벌의 길이 열립니다. 범행 시점에 따라 결론이 갈리므로 개별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제는 가족 간 횡령이면 무조건 처벌되나요?
자동으로 처벌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정법은 형 면제를 없애는 대신 가족 간 재산범죄를 친고죄로 했기 때문에,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수사와 기소가 가능합니다. 게다가 친고죄에는 범인을 안 날부터 6개월이라는 고소 기간 제한도 있습니다.
상속재산을 형제가 가로챈 경우 형사와 민사 중 무엇이 유리한가요?
사안에 따라 다릅니다. 형사 고소는 압박 수단이 되지만 가족 관계가 단절되고 고소 기간·증거 문제가 따릅니다. 민사상 부당이득 반환이나 상속재산분할이 실제 회복에는 더 효과적일 때도 많습니다. 두 절차를 함께 놓고 순서를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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